일상/아름다운 시

춘천은 가을도 봄이지 / 유안진

Forever(2) 2011. 4. 7. 08:39

춘천은 가을도 봄이지 / 유안진

겨울에는 불광동이. 여름에는 냉천동이 생각나듯

무릉도원은 도화동에 있을 것 같고
문경에 가면 괜히 기쁜 소식이 기다릴 듯하지
추풍령은 항시 서릿발과 낙엽의 늦가을일 것만 같아

춘천(春川)도 그렇지
까닭도 연고도 없이 가고 싶지
얼음 풀리는 냇가에 새파란 움미나리 발돋움할 거라
녹다 만 눈응달 발치에 두고
마른 억새 깨벗은 나뭇가지 사이사이로
파고 있는 진달래꽃을 닮은 누가 있을 거라
왜 느닷없이 불쑥불쑥 춘천을 가고 싶어지지
가기만 하면 되는 거라
가서, 할 일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 거라

그저, 다만 새봄 한아름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몽롱한 안개 피듯 언제나 춘천 춘천이면서도
정말, 가본 적은 없지
염두가 안 나지, 두렵지, 겁나기도 하지
봄은 산 너머 남촌 아닌 춘천에서 오지

여름날 산마루의 소낙비는 이슬비로 몸 바꾸고
단풍든 산허리에 아지랑거리는 봄의 실루엣
쌓이는 낙엽밑에는 봄나물 꽃다지 노랑웃음도 쌓이지
단풍도 꽃이 되지 귀도 눈이 되지
춘천(春川)이니까.

 내게도 그저 춘천이니까로 이어지는 젊은 날의 추억이 되살아 난다.

무료한 가을 날, 아무런 이유없이 춘천이 그리워 강의를 잊은 채 친구와 떠난 춘천행.

그러나 막상 떠난 춘천행의 기차는 김현철이 부른 ’ 춘천 가는 기차’가 아니었다. 

계획하지 않았던 여행은 입석으로 서울까지, 그리고 다시 춘천까지의 왕복은 고생 그 자체였다.

그래도 부서지는 햇살을 껴안은 한 장의 사진은 우리에게 행복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지금도 나는 그 시간, 그 춘천이 마냥 그립다.